진짜 코인 바꾸기

Posted by Deadlock on January 03, 2021

2022년의 동전 바꾸는 방법

지갑을 안 가지고 다닌지도 꽤 되었지만 가끔씩 생기는 동전을 하나 둘 씩 모으다 보니 어느새 돼지 저금통이 묵직해졌다. 온라인 폐지줍기는 별로 저금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저금통을 들어보니, 내가 그동안 많이 모았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망치로 깰 수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수고해준 돼지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서 결국 아래의 조그만 구멍을 통해 동전을 빼냈다. 그러다 보니 하수구가 막힌것 처럼 시원하게 동전이 나오진 않았는데, 그래도 낑낑거리며 열심히 동전을 빼냈다.

‘은행에 가져가면 알아서 지폐로 교환 해 주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다가 혹시 몰라서 검색을 해보니 직접 분류한 다음에 가져가야 한다는 글을 보고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사실 얼마나 모았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긴 했다)

얼마나 모았을까? 500원 동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바닥에 깐 돗자리 위에 동전들을 펼쳐 놓으니 돗자리가 안 보일 정도로 많았다. 아내와 나는 내기를 하기로 했다. 얼마인지 맞추는 사람이 70%를 가져가기로. 우리는 서로 다른 금액을 말했고, 서로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동전을 하나 둘 세기 시작했다.

우리는 카지노에서 칩을 쌓는 것 처럼 각 동전들을 10개씩 쌓아서 분류하기 시작했다. 큰 동전들은 줍기도 수월 했지만 10원 짜리 동전들, 그 중에서도 특히 새로 발행된 10원 짜리 동전은 내 손으로 잡기가 힘들었다. 한시간 넘게 동전들과 사투를 벌인 결과, 내기에는 승리했지만 서로의 손에는 동전 냄새와 함께 새카만 손이 남았다. 장갑이라도 끼고 할 걸 후회하며, 그래도 이제 돈을 바꿀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집앞에 내가 주 거래 은행으로 사용하던 K은행이 없어져서, 근처에 W은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W은행 통장도 없었지만, 옛날에 은행에서 동전을 지폐로 교환했던 기억이 있어서,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은행으로 향했다. 동전 자루는 체감상 15kg 는 되는것 같았다. 올때는 홀가분하게 올 수 있을거란 생각으로 도착한 은행에서는, 들어가기도 전에 문 앞에 붙어 있는 종이 한장을 보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동전 교환 안내문 동전 교환 안내문

동전 교환은 “화,수,목” 오전 11시 까지만 가능합니다

찾아간 날은 화요일이었고, 11시는 훌쩍 넘겨 있었다. 이 은행만 이런 걸꺼야 라고 생각하며, 다급하게 근처에 있는 다른 은행을 지도로 찾아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동전 교환 가능한가요?”
”네 교환은 가능해요. 혹시 여기 고객님이신가요?”
”아니요. 그 은행은 사용하지 않는데… 그럼 동전을 교환하면서 통장을 바로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아… 동전 교환 목적으로 통장 개설은 어려워요. ”
”네… 알겠습니다”

추운 날씨에 거의 500m를 걸어서 고생고생하며 찾아간 은행에서 그대로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낑낑거리며 집에 도착한 나는 매우 화가 났다. 집에서 잠들어 있는 동전 회수가 안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왜 특정 날짜 특정 시간에만 교환을 해준다는 것인지… 그래서 근처 은행들에 전화를 돌려서 동전 교환에 대해 물어 보았는데, 답변이 다음과 같았다.

  • 대부분 화/수/목 중에 가능(지점마다 상이함)
  • 주로 오전에만 함(지점마다 상이함)
  • 은행마다 분류를 직접 요구하는 곳이 있고, 오면 기계로 분류해준다는 곳이 있었음(지점마다 상이함)
  • (중요) 해당 은행 통장 없으면 해주지 않음(지점 공통)
    • 요즘은 지폐로 교환해주지 않고, 해당 금액을 통장으로 지급해 준다고 함

고객센터에 전화하는것도 어려웠는데, 어떤 은행은 지점 번호가 친절하게 적혀있는 곳이 있는 반면에, 통합 고객센터로 연결 한 다음 지점으로 연결 안내를 도와주는 곳도 있어서, 동전 교환 하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은행들마다 공통적인 정책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결국 그 날은 동전 교환에 실패했고, 나는 평일 오전에 시간을 낼 수 없어서 그 일을 장모님께 부탁드렸다. 그리고 내기와는 상관 없이 교환된 금액은 우리의 생활비 통장으로 귀속되었다. 😭